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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는 듯 천천히
    서재를쌓다 2015. 9. 15. 21:39

     

     

     

       9월 중순. 한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가을이 와버렸구나, 아침마다 느끼고 있다. 8월보다 조금 쌀쌀해졌다. 토요일, 학원을 한 번 갔고, 한 번 수업을 빠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고레에다 히로즈 감독의 책 <걷는 듯 천천히>. 그의 영화들처럼 담담한 글들이 담겨 있었다. 무심히 읽고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라고 생각되는 그런 글들이었다.

     

       제법 쌀쌀한 때였으니 가을이나 겨울이었을 거다. 우리집은 복층인데, 여름에는 아예 위에서 자질 못한다. 복층이 겉보기에만 좋다는 걸 이 집에서 살면서 느끼고 있다. 아무튼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올라가질 못하고, 봄과 가을에는 올라가 자기에 좋다. 독립적이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공간이다. 외롭지 않으면서 외로울 수 있는 공간인 거다. 소리로는 외롭지 않고, 공간으로서는 외롭다. 그 복층에서 <고잉마이홈>을 봤다. 아래층에서 볼 수 있었는데, 꼭 넷북을 들고 올라가 복층에서 봤다. 복층에서만 집중할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첫회를 온전히 보는 게 쉽지 않아서 보고, 또 봤다. Y언니에게 1회를 보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드라마를 나와 마찬가지로 기대하고 있었던 언니는 이미 포기했노라고 말했다. 다시 시도하지 않겠다고 했다. 몇 달에 걸쳐 10부작의 드라마를 봤다. 결국, 드라마도 좋았고, 다 보았다는 것도 좋았다. 드라마의 마지막,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장례식장에서 주인공 혼자 밤에 남아 있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었다. 이 에세이집을 읽고 그 장면이 감독의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역시 그랬어. 아, 싶은 순간이었다. 그 부분은 출근길에 읽었는데, 눈물이 막 쏟아졌다. 드라마를 본 그때처럼.

     

     

       당시 두 살이었던 나는 이 TV 방송을 책상다리를 한 아버지의 다리 위에 오도카니 앉아서 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TV에 빠져든 내 볼에 까슬까슬한 아버지의 수염이 스치던 그 감촉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TV로 프로야구를 보는 걸 좋아했다. 뭐랄까, 취미라고 부를 만한 게 그 정도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 몇 번인가 함께 고라쿠엔 구장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된 후 둘 사이에 의견 대립 같은 것이 생겨 얼마 안 있어 대화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둘만 남으면 "올해는 어떨까, 자이언츠는?"이라고, 이미 프로야구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인 다 큰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애매하게 대답을 하고, 되도록 아버지와 둘만 남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돌아보면, 정말 차가운 아들이었구나 하는 후회가 함께 떠오른다.

     

        아버지 통야(고인을 밤새 추모하는 의식) 때의 일. 조문객이 모두 돌아가고 조용해진 사찰에서 오랜만에 아버지와 둘만 남게 됐다. 관의 작은 창을 여니, 코를 고는 듯이 아버지가 입을 벌리고 있다. 이대로 고별식을 하는 것은 보기 흉하다고 생각해, 수건을 말아 아버지의 턱밑에 댔다. 그 순간, 내 손에 까슬까슬한 수염이 닿았다. 30년 만에 그리운 그 기억이 되살아나 처음으로 울었다. 아침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p. 203-204

     

     

       8시 26분.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는 문자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인데, 인터넷 뱅킹할 때는 문자가 온다. 장례식에 올 때 통장을 가져오질 않아서 내게 돈을 빌렸는데, 삼만원을 더해 붙이며 메세지를 이렇게 남겼다. '잘썼다.' 그 전의 문자는 5월 28일의 문자인데, 그 날의 메세지는 이렇다. '생일축하.' 그 전의 문자는 온전한 문자다. 인터넷 뱅킹 메시지가 아닌. 2014년 2월 8일의 메세지.

     

    금령아

    보내준거자ㄹ받아ㅆ다

    ㄸㅏ듯ㅎㅏㄱㅔㅇㅣㅆ어라

     

     

       따듯하게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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